비디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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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FW가 발매되고 정신은 온데간데없이 바쁜 와중
갑자기 꽂혀서 하루 온종일 작성하게 된 짧고 두서없는 글입니다.
부디 정독은 하지 마시고 화장실에 앉아 스윽 속독으로 읽으시길 권합니다.




지난 8월 이태원에 VDR의 쇼룸이 오픈했습니다.
쇼룸을 오픈하고 가장 감사한 것은 2015, 2016년부터 구매한 고객분들이 찾아오신다는 점입니다.







제작자도 잊고 있던 기억 저편의 티셔츠 얘기를 하시는 분, 16년도에 여기 옷 한 번 산 이후로 여기 옷만 입는다는 분,
‘대로변에 쇼룸을 오픈해서 제가 다 기분이 좋더라고요’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 등 우후죽순 생겨나는 브랜드 속에서 유행과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브랜드를 중심만 바라보고 수년 동안 찾아주시는 것이라면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어울리는지를넘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히 아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분들이 찾아주시는 것에 대해 보답으로 재밌는 디자인과 지속적으로 좋은 품질의 결과물을 선보이는 것,
최선을 다해 응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좋아하는 브랜드에 대한 코어를 짧지만 명확하게 전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아는 게 아니었는지, 간단한 인터뷰 등으로 제작자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브랜드에 대한 코어를 전달하고자 한 시도는 몇 번 있었습니다만  
말도 잘 못하고 확고한 표정에 비해 고프로든 캠코더는 일회용 카메라든 카메라만 들이대면 머리가 새하얀 백지장이 되어버려 이불킥을 날린 적이 한두 번입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총을 메고 꿩을 들고 할머니랑 사진을 찍었다.



 VDR의 모든 결과물은 말발굽 소리가 나는 오토바이에 나를 태우고 엽총과 석궁 사냥에 능숙하고,  사냥이 끝나면 허리춤에 꿩 수 마리를 매달고 오신, 레이벤 선글라스를 쓰고, 하와이안 셔츠를 즐겨 착용하셨던 멋쟁이 나의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는 나무로 정성스레 새총을 만들어 주곤 하셨습니다. Y자로 생긴 두툼한 나무를 주워 나이프로 슥슥 껍질을 까고 고무줄을 엮고 가죽을 끼워서 만든 정성스러운 새총이었습니다.
학교를 다니고 나서도 주말엔 꼭 시골에 내려가 할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방학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놀러 다니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할아버지가 피부가 까맣고 힘이 쎄고, 운동을 잘하고, 멋진 오토바이 뒤에 나를 태워 다니시는 거대한 할아버지로만 생각했습니다. 오토바이 사고로 10년의 투병생활을 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고, 백발의 할아버지가 형님, 형님 하며 손수 써온 편지를 읽으시는 모습, 할아버지들이 아이처럼 우시는 모습을 보며 할아버지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멋진 할아버지였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속 오토바이의 기종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할아버지는 오토바이를 참 좋아하셨다.




돌아가신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할아버지 손길이 닿은 분들이 명절에 할머니께 선물을 가져오고, 할아버지의 묘소를 깎으러 오시는 것을 보고 도대체 어떤 삶을 사셨길래 이러한 것들이 가능할까?를 생각하게 되었고 할아버지의 근간은 ‘남자다움’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남자다움의 의미는 요즘 흔히들 말하는 상남자와는 거리가 있는 ‘독립성을 갖고 본인의 성격이나 색깔에 긍지를 갖고 당당하게 걷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더해 주위의 이들에게 뿌린 베품의 씨앗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수년이 지나도 많은 이들이 찾아오는 것처럼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열매들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할아버지와 친구들 / 총을 들고계신 분이 나의 할아버지




‘착용자가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착용할 수 있으며 손주에게 물려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것’을 코어로 튼튼한 원단과 봉제 테크닉을 통해 착용자의 남자다움을 드러내줄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고자 하다 보니 자연스레 아메리칸 캐주얼이라는 광범위하면서 깊이 있는 장르의 색깔을 많이 입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외형적으로도 할아버지가 좋아하고 착용하셨던 옷, 문화도 이러한 류(類)였습니다.




 아메카지는 그들의 시작이 미국인들의 캐주얼에 대한 동경으로 시작된 만큼 레플리카 즉, 복각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장르 내 편집샵들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일본의 유수한 브랜드들처럼 그 시대의 원단과 스티치, 패턴, 봉제 기법, 봉제사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연구하고,구현하는 레플리카 브랜드는 아닙니다. 당연하지만 우리에게는 ‘재해석’이라는 단어가 필수로 붙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레플리카 브랜드로 지칭 받기 위해서는 브랜드의 오랜 역사를 통한 연구를 통한 정제된 아카이브, 사회 문화적 인프라, 자본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 시대의 원단 직조 방식을 따라야 하고 (원단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자연환경까지, 봉제를 구현하기 위해 미싱까지, 패턴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패턴을 사용한 이유까지) 단순하게 껍데기만 비슷하게 따라 하는 것이 아닌, 옷을 구성하고 있는 본질을 꿰뚫고 이를 재현해야 합니다. 현대에 와서는 굳이 불필요하고, 무모한 디테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감성이라는 단어로 이를 실행하기에는 객체 주위를 둘러싼 환경이 뒷받침해 주지 못합니다. 국내에서 진정한 레플리카 브랜드가 탄생하려면 단순히 디렉터가 복각에 의미를 좇는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닌, 브랜드의 방향이 정확히 레플리카라는 깃발을 향해서 가고 있는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닌 브랜드 주변을 둘러싼 주위 환경 즉, 원사, 원단, 공장, 패턴, 미싱, 그러한 옛 미싱을 핸들링 할 수 있는 장인 등 수많은 요소들과 충분한 시간, 자본, 인프라가 합쳐져야 레플리카 브랜드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죠.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패배 이후 미국에 대한 동경으로 미국의 문화를 배우고자 했습니다.

그중에는 의복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이 남긴 수많은 샘플들과 전후 흡수된 미국의 사회, 문화들로 일본은 수십 년에 걸쳐 레플리카 브랜드들이 탄생하기 좋은 환경이 형성되었습니다.
한 가지 예로, 브랜드는 미국의 의복을 재현하고 싶은데 원단 공장, 봉제 공장이 이를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것이 아닌, 브랜드를 둘러싼 환경들도 미국의 문화를 학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풍부한 환경 속에서 재현해낸 미국인들의 캐주얼을, 미국 자신들조차 잃어버렸었던 캐주얼을 일본은 재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메카지의 근본인 미국의 캐주얼 그리고 미국은 어떤 나라일까요?









  미국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나라입니다. 영국에서의 이주부터 독립선언(1763),개 척시대, 남북전쟁, 노예 해방, 산업화 등 13개의 주로 시작하여 현재 50개 주로 이루어진 세계 초강대국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59년입니다. 259년 동안 그들은 신이 선택한 나라라는 확신을 갖고 자신들의 비전들을 실현해 내었습니다.








뿌리인 영국에서의 독립을 선언하고, 아메리카 대륙 내에 있던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럽 열강들을 이겨내고(물론, 유럽 내의 이권다툼의 영향 이 있었지만 이것 또한 그들의 운),
인디언 들을 몰아내고, 노예 해방을 선언하고, 그 와중에 마치 그들이 믿는 신이 선택한 것 같은 운들이 따르고(러시아에게 1867년 단돈 720만 달러에 산 땅인 알래스카에서 3년 만에 3억 달러 가치의 황금이 발견되고 현재 석유와 천연가스가 넘쳐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짧은 시간 내에 그들의 운명을 개척해나갔습니다. 패전국가인 일본에게 미국의 이런 역사적 배경 스토리는 “져서, 분하다.”를 넘어서서 “우리가 질만했구나” 로 느껴지고, 더 나아가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오게 되었을 것입니다. 지칭하는 네이밍부터 그렇듯 일본의 아메카지 브랜드의 절대다수는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이 출발점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캐주얼 브랜드는 지역적, 환경적 조건을 베이스로 한 니즈의 충족이 출발점입니다. 추운 광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잘 찢어지지 않고 따뜻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자 출발한 브랜드, 부두 노동자를 타깃으로, 사냥꾼을 타깃으로, 광부, 벌목꾼, 댐 건설 인부 등 브랜드의 목적은 명확했고, 이들 중 일부는 세계대전 기간의 군납을 통해 안정적인 회사로 거듭나게 되고, 그들만의 튼튼한 아이템으로 명확한 타깃에게 인정받으며 성장해나갔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역사가 명확하고 확고한 비전으로 단단하게 개척해나갔듯 브랜드 또한 높은 내구성을 가지도록, 춥지 않도록 결국 오래 입을 수 있도록의 단순하지만 명확하고 실용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의복의 디자인 디테일을 구성해나갔습니다.








그들처럼 우리 또한 단순하지만 명확함을 바탕으로 착용자의 ‘남자다움’을 표현하고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만듭니다.









옛 방식을 통해 결과물을 재현하는 것에 포커싱 한 것이 아닌, 우리의 결과물을 위해 옛 디테일을 차용하고,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더해 진정한 ‘Permanent Clothing’을 만들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다수를 만족시키기 위한 결과물보다는 독립성을 갖고 본인의 성격이나 색깔에 긍지를 걷고 당당하게 걷는 것을 도울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나갈 것입니다.